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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연구회 숙제

한 여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남자가 전 세계와 소통하기까지 --2010.11.30

지난 주말에 소셜 네트워크를 봤는데요 컬럼은 아니지만 공감이 너무 되어서 올립니다^^

한 여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남자가 전 세계와 소통하기까지 (소셜웹 트렌드 스터디 일일숙제 2010.11.30)
시사인 기사 

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858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술집이어서 주변이 시끄럽다. 하지만 가장 시끄러운 건 이 남자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자기가 수능 만점 받은 걸 자랑하다 말고, 이젠 어떤 동아리에 가입해야 상위 1% 인생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예전에 루스벨트 대통령도 가입했다는 최고 엘리트 클럽에 가입할 궁리하느라 정신 팔린 남자 앞에서 여자는 슬슬 지쳐간다. 

결국 말싸움이 시작된다. 홧김에 여자의 변변치 못한 학벌을 콕 집어 비아냥거린 남자. “기껏 보스턴 대학에 다니면서!” 그 대목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여자가 대차게 쏘아붙인다. “넌 컴퓨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겠지만 좋은 여자는 못 만날 거야. 괴짜(nerd)라서? 아냐. 재수 없는 XX(asshole)이기 때문이야!”

이것이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이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 <대부>의 첫 장면을 보고 이렇게 감탄한 적이 있다. “결혼식 시퀀스가 끝날 무렵이면 영화의 주요 캐릭터 대부분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관객은 각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다 알게 된다. 이 놀라운 연출 솜씨 덕분에 관객은 대부의 세계로 단번에 빨려 들어간다.” <대부>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다 알게 된다’는 점에서, 덕분에 그들의 ‘세계로 단번에 빨려 들어간다’는 점에서, <소셜 네트워크>의 짧지만 강렬한 첫 장면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놀라운 연출 솜씨’를 보여준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칭찬받을 만하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세 가지 힌트를 얻는다. 남자는 엘리트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얘기 떠드는 걸 더 좋아한다. 컴퓨터에 미친 괴짜이면서 평생 좋은 여자 만나기 힘든 ‘재수 없는 XX’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사실이 주인공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의 삶을 이해하는 필수 요소이며, 그가 개발한 사이트 ‘페이스북’의 거짓말 같은 탄생 설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첫 장면은 고작 10분 정도 분량인데도 시나리오에서는 8쪽이나 차지한다고 들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굉장히 많은 대사를 쏟아낸 배우들은 이 한 장면 찍으려고 같은 연기를 아흔아홉 차례나 반복해야 했다. 어린 배우들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내고 싶은 감독의 집념이었다고 해두자. 하지만 감독의 집념도 주인공 마크의 집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여자 친구한테 차인 후 쓸쓸히 하버드 대학 교정을 가로질러 기숙사에 돌아온 마크. 홧김에, 그리고 술김에, 여자들 제대로 물 먹이는 사이트 하나 만들어 오픈한다. 대학 컴퓨터 DB를 해킹해서 하버드 여대생의 모든 신상을 턴 다음, 한 화면에 사진 두 장씩을 올려 누가 제일 섹시한지 토너먼트로 승자를 겨루는 ‘페이스매시’ 게임. 한때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의 코너 ‘이상형 월드컵’을 연상해도 좋을 이 게임은 하룻밤 사이에 방문자 5000명을 끌어 모은다. 

성공 스토리 아닌 성장 스토리

이 사건으로 근신 처분을 받지만 동시에 컴퓨터 천재라는 명성도 얻는다. 마크가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하는 엘리트 클럽의 회원인 윙클보스 형제가 소문을 듣고 동업을 제의한다. 하버드 대학 학생들만의 인맥 교류 사이트. 그걸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하더니, 그들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후, 절친한 친구 에두아르도(앤드루 가필드)의 돈을 빌려 자기 혼자 ‘페이스북’을 만들어버린 마크. 그게 순식간에 모든 사람이 탐내는 사이트가 되면서 겨우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차례로 닥쳐온다. 장난처럼 시작한 사이트가 기업가치 300억 달러의 황금알로 뒤바뀌고 그 과정에서 거액 소송이 제기됐다. 

<소셜 네트워크>를 향해 사실과 얼마나 일치하는 이야기인지 묻는 건 무의미하다. 이건 누가 어떻게 ‘페이스북’을 만들었는지 고증하는 영화가 아니라, 페이스북 때문에 누구의 인생이, 왜, 얼마나, 어떻게 흔들렸는지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를 발명했다는 아이러니’에 마음을 빼앗긴 감독은 한 남자의 ‘성공 스토리’ 대신 한 세대의 ‘성장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온라인 친구 5억명을 얻는 대가로 단 한 명인 친구와 결별해야 했던 스물여섯 살 억만장자 컴퓨터 천재. 그가 텅 빈 방에 홀로 남아 어떤 이유로(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 하염없이 엔터키만 누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전성시대를 사는 우리 시대 디지털 인류 모두의 실로 고단한 자화상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크게 성공했지만 또 누구보다 크게 실패했고, 누구보다 멀리 앞서갔지만 또 누구보다 가장 뒤처진 그 모습이 참 서글프고 안쓰러워 당신도 함께 한숨짓게 될 것이다. 

“전 ‘페이스북’이 뭔지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는데 이 영화가 재미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페이스북은 물론 싸이월드나 블로그, 스마트폰과도 담을 쌓고 살아온 나의 고백이 혹시 대답이 될까? 난 마피아 생활을 해본 적도 없도, 마피아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대부>를 보고 즐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잘 만든 영화는 원래 그런 법이다.